한국에 온 지 13년 된 알 주무아드 베네시아씨
오히라 구니에(일본)

▲ 주무아드 베네시아
2010년, 한 달을 보내고 벌써 2월이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작년에 있었던 일이 어제일 같기도 하고 정말 빠르게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없었던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일상의 언어가 되고 있다.

그만큼 여러 외국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과 결혼하여 만들어진 다문화 가정들이 많이 생기고, 정착해가고 있다.
그중에서 필리핀 사람으로서 일찍이 진안군에 와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정직하고, 꿋꿋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알 주무아드 베네시아씨(39, 필리핀)다.

진안군 동향면 자산리 용암마을에서 남편 전성태씨와 시어머님 그리고 아들(13세), 딸(10세) 모두 다섯 식구가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녀에게 그동안 일어났던 귀중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저는 여기에 온지 13년이 됐어요. 고향 필리핀에서는 그때만 해도 20살이 되면 결혼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저는 어쩌다 보니 25살이 됐어요. 이제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세부라는 섬에 있는 백화점에서 일을 하다가 아는 사람을 통해 축복결혼에 참여하게 됐어요."

축복결혼은 세계평화가정연합에서 주관하는 초 종교, 초 국가, 초 민족적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을 말한다.
그녀는 처음 시집왔을 때 한국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말한다.
"한국이라 해서 필리핀의 마닐라 같이 도시인줄 알았는데 상상외로 산이 많이 있는 아주 시골에 오게 되니까 놀라기도 하고 조금 실망도 했어요."

처음 외국에서 와 살아가는데 가장 먼저 부딪치는 과제는 바로 언어일 것이다.
"제가 온 그때(1997년)는 아직 외국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한국어 교육을 해 줄만 한 곳이 없었어요. 스스로 한국어를 배우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었지요. 너무 막막했어요. 그런 가운데 광주에서 마트를 경영하시는 시누이 가게 일을 도와주는 일이 생겼고, 그곳에서 시누이가 한국어를 많이 가르쳐 주었어요. 저는 시작하면 끝까지 해야 하는 성격이다 보니 한국어를 못해 답답한 것을 참지 못하고 정말 열심히 배웠어요. 그래서 그때 한국어를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남편은 현재 산림조합에서 숲 가꾸기 일을 하고 있다. 시골에 있다 보니까 그녀가 생활하는데 여러 가지 신경 쓰이는 일, 어려운 일들이 있을 것이다.
"농촌에 있다 보니까 어른 분들과 대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땐 언제나 '잘 못하지 않았을까? 행동을 조심스럽게 해야지.'라고 긴장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엔 환경도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아 어려웠지만 이제 13년이 되다 보니까 많이 적응하고 이제는 내 고향, 내 집이 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살면서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좋은 일, 감사하는 일도 많았다.
"요즘 자식을 낳은 보람을 느껴요. 우리 아들과 딸, 모두 건강해서 지금까지 병원도 거의 안 가봤어요. 그냥 어디 아픈가 싶을 땐 약국에서 약을 사서주면 해결됐어요. 둘 다 순하고 착해서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문제없이 잘 보내고 있고요."

그녀는 현재 화장품 판매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동향면 자율방범대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이밖에 동향면 시골 학생들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한 특기적성영어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는 시골에 있는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는 기회가 도시보다 부족하니까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저도 학부모이기 때문에 많이 힘이 되고자 생각하고 있어요."

베네시아씨의 앞으로의 소원은 뭘까?
"가장 큰 재산은 건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가족 모두 끝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요."
그녀는 고향이 멀어서 한국에 온 후 단 두 번밖에 가지 못했다. 그나마 한 번은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가 빨리 고향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