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월(73, 동향 학선리 을곡)

내가 21살때에 시집와서 살던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시집와서 보니까 상투 꼬부선 시할아버지가 계시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계시고, 시동귀간들하고 살았고, 시집살이 하는데 고은 한복입고 앞치마 두루고 물동이 이고 우물로 가서 물을 이고 오면 이리쭐렁 저리쭐렁해서 고운 한복에 물을 *감토써서 다 버렸다.
설명절이 돌아오면 한 20일 남겨 놓고 술을 담아서 아래목에 이불로 싸놓고 그때부터 명절지낼 준비를 한다.

꼬도밥을 찌는데 두 번을 쪄서 아랜목에 말리고, 다 무루면 손질해서 철에다 불 때가면서 일구고 식캐해서 엿 만들어서 *백산 만들고, 유가 만들고, 콩 강정도 만들도 이런 것들을 다 손으로 만들고 가래떡도 손으로 만들었고, 지금은 기게화가 돼여서 기게로 하니까 누어서 떡먹기 보다 더 쉽다.
내가 절문시절에는 모든 것을 다 손으로 만들어서 제사를 지내고 제사를 지내고 나면 우리집에 상할아버지가 계시니까 집안에 어르신들께서 세배하로 오시는데 길이 사납고 미끄러워서 신발에다 새끼줄로 창창 감꼬 옵니다.

손님들을 접대합니다. 막걸리도 걸러서 챙기고, 떡국을 끄려서 손님이 먹을 수 있게 해서 드립니다.
동네 손님들도 다 옵니다. 점고 늑고 간에 다 옵니다.
우리동네 분들만 오는게 아니라 웃마을 사람하고 아랫마을 사람들도 옵니다.
아이방에다 *과방을 차려놓고 상을 차립니다. 한사람이오면 "떡국 한그릇"이라고 합니다.
새사람이 오면 "떡국 새그릇"이라고 신호가 옵니다. 다섯사람이면 "다섯그릇"이라고 합니다.

이럭게 해서 5일간을 꼬박 부억에서 나갈 틈이 업시 살아야 했지요.
설이 돌아오면 이럭게 일을 하고 살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트게 했던가 십은 마음이 든다.
설명절이 돌아오면 음식만드는 일이 큰일 이었다. 음식만들때 아이들이 "나, 하나", "나, 하나"하면서 먹을라고 하고, 새옷과 양말 사달라고 할때가 좋아던것 갔고 밤이면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친구들하고 불놀이 하고 시끌시끌 할때가 좋았다.
설 지내고 손님접대하고 나면 밖에서 풍물 소리가 구성지게 나고 할때가 재미있었다. 내가 절물때는 이러게 살았는데 지금은 73살이 되었다.

*감토써서: 물을 뒤집어 쓰다.
*백산: 일본식 표현으로 오꼬시라고도 함. 밥풀과자를 말함.
*과방: 상을 차리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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